내가 기억하는 사건, 그리고 민중운동
1. 버마 아웅산 암살사건
내가 기억하는 사건들중에 맨 처음 기억나는것은 버마 암살사건이다.
손가락을 세어보니 1983년도는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지금의 미얀마) 에 갔었는데 폭탄이 펑~ 하고 터져서 대통령은 다행이 안 죽고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죽거나 다쳤다는 기억. 그게 나쁜 북한에서 일부러 저질러졌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랬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한국에 오고싶어했으며, 한국에서 참회하고 살고자 했었는데 그당시 정부에 의해 뭔가가 철저히 은폐되고 그 사람이 오지 못하게 조치를 하는등 의문이 많은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2. 김민석 데모대 의장 체포(당시 내 기억을 더듬어 이렇게 표현)
김민석이란 대학생들의 대표가 체포되었다. 실로 경찰들을 따돌리고 몇년간이나 숨어서 신출귀몰 했다고 표현했었다는 표현을 했던 보도가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울대 총 학생회장이었던 김민석씨는 시험기간엔 몰래 시험을 치루었으며, 쫒기는중에도 틈틈히 공부를 했는지 학점을 A+ 를 늘 유지했다고 한다)
뭐.... 지금은 돈맛에 이리붙었다.. 저리 붙었다.. (한때 정몽준한테 붙었다는 말) 하다가 현재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 단식투쟁을 하다가 최근에 영장이 발부되었다가... 거부를 하는둥.. 정치의 말로를 걷고있다.
3. 경찰이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고 조작했던 박종철 사건.
서울대학생 형이 데모를 하다가 붙잡혔는데 이름은 박종철이고... 얼마후 알게되었는데 고문을 하도 당해서 결국 죽은 사건이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87년의 신촌은 온통 최루탄 범벅이 된 아주 안 좋은 기억이 난다.
4. 이한열 열사 사망사건과 6-29 선언
내가 기억하는 민주주의 투쟁은 87년도부터이다.
이전에 518 민주화 항쟁같은 큰 사건은 어렸을때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이것도 나중에 알고보니 철저히 은폐가 되어서 어린 나로써도 기억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ㅡ 너무 어릴때라 그랬을꺼라고? 아니다.... 난 신기하게도 더 어렸을때인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을때 우리집 앞을 지나가던 (남영동 앞 큰길) 꽃차가 기억난다. 까만 색깔의 옷을 입은 많은 순경들과 시민들이 못 넘어오게 인도를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주황색 빨래줄"로 인도를 막아 놓았던... 꽃차가 내 앞을 지나갈때 옆에 아줌마들이 펑펑 울었던 기억... 이런 주변 상황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항상 대학생 형 누나들이 왜 길에서 데모(그땐 무조건 데모대 라고 불렀다) 를 하는지 잘 이해를 못했었고, 매일 코가 맵고 (길도 많이 막혔을텐데 차를 타고 왔다갔다 하질 않아서 그런것은 실감이 나지 않음) 데모대가 지나가면 한 10분 지나면 코가 극심하게 맵기때문에 얼른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얼마후 TV에서는 어떤 형의 초상화가 크게 그려진 채로 엄청난 대오가 시청앞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보도방송이었고, 그것이 시위하다가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형이라는것도 알았다. 대모는 연일 끊이지 않았고, 데모가 없는 날에도 연대앞 굴다리 그런데는 최루탄 냄새가 배서 코에 휴지를 틀어막고 지나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살고있었던곳은 신촌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이었다.
골목에 담장이 조금 큰 집은 락카로 "독재타도 민주쟁취" 라고 붉은색 또는 검은색으로 글씨가 써져있고, 떼로 지나가던 대학생 형들처럼 친구들과 발박자를 맞추며 오른손을 불끈 불끈 들면서 봐왔던것을 외치고 한글자씩 외치며 놀았다. "독!. 재!. 타!. 도!. 민!. 주!. 쟁. 취!" 물론 아무생각 없었던것은 아니다. 어렴풋이 지금은 형들이 나라에 대항하고 있고 뭔가 복잡한 일이 있었나... 보다...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내 코는 그런 형, 누나들이 지나가고나서 매워졌기 때문에 형들이 지나가면 불편한 마음 뿐이었다.
어느날이었다. 역시 학교가 파하고 동네 골목에서 놀고있는데 갑자기 도로쪽이 조용해졌다.
무슨일인가 하여 도로로 나와보니(도로는 8차선 도로였다)
집앞 도로가 한산... 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여러 무리의 대학생, 누나들이 200명쯤 모여서 대오를 갖췄다. 대오를 갖추는데 3분 걸렸나? 어디선가 여기에 이 시간에 모여 구호를 외치는 시위를 하려고 모인것이 분명했다. 형, 누나들은 "독.재.타.도.민.주.쟁.취" 를 외치며 지나갔고... 나는 "에이씨... 또 시작이네..." 라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 내 친구네 아버지, 길가 세탁소 아저씨들도 어느샌가 그 대열에 동참해서 함께 외치는 모습을 봤다.
그때... 분명하게 난 느꼈다. "저 형들이 잘못하는것은 아니구나. 어? 길가에 토큰 아저씨도 계시고... 우체부 아저씨도 박수치고 계시네..."
그리곤 열흘정도 있다가 tv에서 자주 나오던 노태우라는 사람이 기자회견 같은것을 하는데 육이구(6.29) 선언을 했다는 내용이었고, 그것은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되었다.
그리고나서부터 조금씩 대통령은 그때까진 수백명.. 아니 수천명 정도가 어디에 모여서 선거를 해서 대통령을 뽑는다는것을 알았고, 육이구 선언을 한 다음부터는 땡하면 전두환 대통령이 나왔었는데 땡~ 하면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자주 얼굴을 비추었던 기억이 난다.
5. KAL기 폭파사건.
육이구 선언이 있고나서 몇달후엔 무차별적으로 우리동네에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의 포스터가 붙기 시작했다. 어떤벽에는 한명씩 한명씩 사이좋게 붙은곳도 있었고 또 어떤곳은 벽 전체가 노태우 대표의 얼굴로 도배되는 곳도 있었다.
9시 뉴스를 아빠랑 보고있는데 좀 황당한 뉴스도 나왔다. 벽에 김대중 대표의 포스터를 부치던 어떤 종사자가 노태우 대표의 포스터를 붙이던 종사자한테 망치로 맞아서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상하게도 범인이 잡혀서 그런지 그냥 단신으로 처리된 정도였지만, 그때의 어린 내가 받았던 충격은 내 생에 처음 친구네집에서 포르노를 처음 보았던 기억처럼 가히 충격적이었었다. 사람을 망치로 죽이다니....
그리고 나서 우리나라로 향하던 여객기가 공중에서 폭파되었고, 얼마후 얼굴이 예쁘장한 어떤 누나가 그 큰 비행기를 터뜨렸다며 잡혔다. 이름은 마유미이고, 한국 이름으로는 김현희 라고... 그녀는 무슨 약을 먹었는지 거의 실신 된 상태로 비행기를 내려 걸어내려왔고, 입은 하얀걸로 막아놓았다. (나중에 자살을 막기위해서 또한 그녀가 어떤 말도 못 내뱉게 그랬다는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ㅡ 내가 볼땐 이 사건 정말 미스테리 하다)
이 사건을 통해서 수세에 몰린 정부가 지원하는 민정당이 대승을 거두었으며, 6공화국은 노태우가 당선되어 군부 세력이 한국정치를 잇게 되는 사건을 알았을때의 분노란....
6. 88올림픽.
노태우 대통령이 88올림픽 개막식에 나와 기립박수를 받을때 어떤 아저씨가 이런말을 한게 기억난다. "고생은 전두환이가 다 하고 노태우가 세계인 앞에서 박수받네..." 올림픽 개막식때는 임시 공휴일이라서 친구랑 서부이촌동에서 라볶이를 먹으면서 (친구 누구의 생일이었다) 지켜봤는데 아마 그 분식집 아저씨였던것 같다.
6학년이었던 난 그때 속으로... "고생은 무슨...고생이람" 이라며 그 아저씨에 대해서 극도의 적개심을 품었었던 기억이 난다.
7. 임수경 누나 사건.
임수경누나 사건은 어떤 대학교 형과 임수경 누나가 독일에서 어디로 어디로 해서 북한에 가서 빨간 태극기를 들고 서 있고 북한에서 무척 환영받고 밝게 웃음짓던 임수경 누나가 기억난다.
국내 언론은 발칵 뒤집혔고 임수경 누나가 묵음처리된 영상에서는 뭐라고 외치면서 손짓 "독.재.타.도.민.주.쟁.취" 를 외쳤던 우리 동네에 자주 출몰 하던 형들의 손짓과 똑같았다.
그 누나는 쉽게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면 잡히기 때문에... 누나는 한번 들어오려다 우리나라에서 못 들어오게 막아서 못 왔고 두번째에... 임수경 누나는 북측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면서 떳떳하게 판문점을 통해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어른들은 "이제... 저 여학생은 죽었다..." 라고 말하곤 했다.
8. 강경대사건.
명지대학생이 시위중에 전투경찰한테 밟혀죽은 사건으로 기억난다.... 공무원이 되고난 후 노고산동사무소 (지금의 대흥동사무소) 바로 뒤 주차장 옆 건물은 그당시의 학생들을 많이 잡아다 고문한 옆 건물이 이 건물이라고 노고산동 직원들이 알려주어 감회가 새로웠던 기억이 난다.
이 이후로는 얼마 되지 않은 것이라 일일히 나열하기도 버겁다...
이 땅의 민주화는 언제 올것인가.
이메가는 알고나 있을까.
챠우챠우의 노랫말을 조금만 인용하자면,
아무리 애를 써봐도,
아무리 노력해봐도.. 우리들의 목소리가 들릴것이다.